Quote
캐모마일
존재감은 막 드러내진 않으나 은은하니, 존재하긴 하는 걸 알려주니?
Summary
사르르 라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라짐’과 그를 대하는 태도를 다루는 게 주인 시 같다.
너구리의 허망함이라는 표현이 뭔가 좀 귀여워서 인상에 남은 케이스.그 아래 연부터 쭉 갈 수록 덧 없어 보이는 것들에 달관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사라짐, 상실’ 이라는 것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잇지 않을까, 그게 좋지 않을까 라고 시인이 말하는 것 같이 느껴짐. 그래서 우리도 초연하게 사라짐을 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까지 생각이 든다. 때로는 한 발 치 멀리 떨어져서,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
사라짐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러한 것은 막을수도 없고. 그러한 사실을 때닫는 순간을 이 시에서 표현하는 것 같아 울림이 깊다.
사람은 언제 죽는가? 라는 그러한 존재론적 질문도 생각난다. 단순히 생물학적 죽음 외에도 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을 개 죽는다. 뭐 그러한 표현도 생각나고. 그러면 사람은 언제 죽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