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성이란 무엇인가
📌 한입 요약
사회학의 오랜 **구조-행위 논쟁(structure-agency debate)**에서 “행위성(agency)“은 끊임없이 호출되지만 정작 정의된 적이 없었고, Bourdieu·Giddens의 이론에서는 구조에 흡수돼 습관(routine)으로, 합리적 선택 이론에서는 목적지향성(purposiveness)으로 환원되며 ‘납작한’ 개념에 머물러 있었다(Context). Emirbayer와 Mische의 통찰은 행위성을 어떤 고정된 실체나 능력이 아니라 **시간 속에 배태된 사회적 관여 과정(temporally embedded process of social engagement)**으로 봐야 한다는 것 — 즉 행위자는 늘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시간 지평에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으며, 행위성의 정체는 이 시간 정향(temporal orientation)의 변이에 있다는 재정의다(Insight). 이 통찰에서 그들은 행위성을 세 분석 차원으로 해체(disaggregate)하는데, 과거 패턴을 선택적으로 재활성화하는 iterational 차원(반복적·습관적 차원, schematization), 가능한 미래 궤적을 상상적으로 생성하는 projective 차원(투사적 차원, hypothesization), 그리고 현재 상황의 요구에 실천적·규범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practical-evaluative 차원(실천-평가적 차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지 phronesis)이 그것이며, 이 셋은 결코 분리되지 않고 **화음 삼화음(chordal triad)**처럼 늘 함께 울리되 맥락에 따라 어느 음이 지배적인지가 달라진다(Solution). 이 논문은 경험 데이터를 다루는 연구가 아니라 이론사회학 논문이므로, 그 ‘근거’는 실험 수치가 아니라 Mead·Schutz·Bourdieu·Joas·Arendt 등을 가로지르는 사상사적 종합과, 행위성을 시간 차원으로 절개해 보이는 개념적 해체의 정합성에 있다 — 가령 습관(habit)조차 단순한 자동반응이 아니라 과거 schema를 능동적으로 재활성화하는 agentic한 작업임을 드러내고, 구조와 행위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이중 구성(double constitution)(Archer의 central conflation 비판은 수용하되 그의 analytical dualism은 거부하는 제3의 길)으로 둘의 관계를 재배치한다(Evidence). 다만 저자들 스스로도 인정하듯 세 차원의 변이를 실제 경험연구에서 어떻게 측정·조작화할지는 미해결로 남으며 틀 전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화음 삼화음이라는 음악적 비유가 어디까지 분석 도구이고 어디서부터 수사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Limitations).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 어떤 사회적 조건이 한 차원을 지배적으로 만드는가, 행위자는 어떻게 과거 지향에서 미래 지향으로 정향을 전환(예: 위기·변동기)하는가, 그리고 이 삼화음 틀을 실제 사례 분석에 어떻게 작동시켜 변형과 재생산을 구분해낼 것인가다(Open Questions).
흐름 따라 읽기
논지 흐름(throughline): agency는 호출되나 정의된 적 없음 → 기존 이론은 agency를 routine(Bourdieu/Giddens) 또는 purposiveness(합리적 선택)로 환원 → 시간적 재정의: chordal triad → iterational(과거·schema 재활성화) → projective(미래·상상적 궤적) → practical-evaluative(현재·phronesis 판단) → double constitution과 경험연구 함의.
문제 설정 — 끊임없이 호출되나 정의된 적 없는 개념
이 절은 논문 전체의 출발점으로, agency가 사회이론에서 왜 “혼란과 긴장의 원천(source of increasing strain and confusion)“이 되었는지를 진단한다. 저자들은 agency라는 용어가 selfhood, will, purposiveness, intentionality, choice, freedom, creativity 등 수많은 단어와 연결되면서도 정작 “elusive, albeit resonant, vagueness”(공명은 하지만 붙잡히지 않는 모호함)에 머물러 체계적 분석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structure와 agency의 상호침투(interpenetration)를 보이려는 시도 속에서 많은 이론가가 agency를 structure에 너무 단단히 묶어버려, 그것을 “고유한 분석 범주(an analytical category in its own right)“로 구별해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는 “flat and impoverished conception”(납작하고 빈곤한 개념화)이며, 합리적 선택이론의 추상적 의지주의를 벗어나는 순간 곧장 structure에 흡수되어 agency가 실제로 사회적 행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놓친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한다 — (1) agency를 여러 구성요소로 분석적으로 해체(analytically disaggregate)하고, (2) 그 차원들이 structure의 다양한 형태와 상호침투하는 방식을 보이며, (3) 이런 차별화된 개념화가 경험연구에 갖는 함의를 짚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들의 관심은 도덕적·실천적인 것으로, 자유의지와 결정론(free will and determinism)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행위자가 “자기 삶의 조건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의 문제로 새로 던진다.
기존 행위 이론 비판 — routine 아니면 purposiveness로의 환원
이 절은 문제 진단을 이론사적으로 구체화하여, 현대의 주요 행위이론들이 agency를 한쪽 차원으로 환원해왔음을 보인다(“Theorizing Agency” 부분). 저자들은 긴장의 뿌리를 계몽주의 논쟁 —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 대 도덕·규범 기반 행위 — 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것이 Kant의 이원론(conditional/normative)을 거쳐 Parsons의 effort 개념으로 이어졌으나 Parsons조차 행위의 시간적 차원을 끝내 Kantian 이원론에 가둔 채 “effort라는 black box”를 열지 못했다고 평한다. 동시대 진영에 대한 핵심 비판은 둘로 갈린다. 한편 Bourdieu와 Giddens 같은 “theorists of practice”는 habitus와 routine에 선택적으로 주목하여 agency를 habitual, repetitive, taken for granted한 것으로 보고(미국 사회학의 지배적 시각, ethnomethodologist와 new institutionalist도 공유), 다른 한편 rational choice theory와 현상학은 goal seeking과 purposity를, 공론·소통 이론과 일부 페미니즘은 deliberation과 judgment를 과도하게 강조한다. Coleman의 합리적 선택은 “actions are ‘caused’ by their (anticipated) consequences”라는 사후적(post hoc) 인과귀속에 머물러 행위자가 선택을 상상·평가·재구성하는 해석 과정을 놓치고, Alexander는 agency를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해체했으나 이를 normativity 범주에 종속시키고 명시적 시간 틀에 위치시키지 못한다. 결국 routine, purpose, judgment 모두 agency의 중요한 차원이지만, “그 어느 것도 단독으로는 agency의 온전한 복잡성을 포착하지 못하며(none by itself captures its full complexity)” 하나가 agency 전체와 동일시될 때 차원들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dynamic interplay)을 잃는다는 것이 핵심 논지다.
핵심 정의 — 시간적으로 배태된 사회적 관여와 chordal triad
이 절은 논문의 이론적 중핵으로, 앞선 비판을 딛고 agency의 적극적 재정의를 제시한다(“The Chordal Triad of Agency”). 저자들은 agency를 “the temporally constructed engagement by actors of different structural environments… which, through the interplay of habit, imagination, and judgment, both reproduces and transforms those structures in interactive response to the problems posed by changing historical situations”로 정의한다 — 즉 agency는 a temporally embedded process of social engagement(시간 속에 배태된 사회적 관여 과정)이며, 과거에 의해 정보를 얻고(iterational 측면) 미래를 향해 정향되고(projective 측면) 현재 속에서 작동한다(practical-evaluative 측면). 이 셋은 별개이되 늘 함께 울리는 음으로서 하나의 chordal triad(화음 삼화음)를 이루며, “all three dimensions resonate as separate but not always harmonious tones”라는 비유로 표현된다 — 어느 한 음(tone)이 맥락에 따라 지배적이 될 수는 있어도 다른 두 음이 부차음(subtones)으로 늘 함께 울린다. 더 급진적으로, 행위의 structural context 자체도 시간적·관계적 장(temporal-relational fields)이며 “ways of ordering time”의 다중적·중첩적 질서이므로, agency는 추상적 보편이 아니라 historically variable(역사적으로 가변적)한 현상이다. 저자들은 이 관점을 relational pragmatics(관계적 실용주의)로 명명하고, agency를 Mead의 emergent events·sociality 개념과 Joas의 “situated creativity”에 뿌리내려 self를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라 “내적 대화(internal conversation)“의 관계적 구조로 본다.
iterational dimension — 과거·습관·schema의 선택적 재활성화
이 절은 chordal triad의 첫 번째 음을 상술하며, 과거(past)가 가장 공명하는 화음 변주로서 agency가 어떻게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지를 다룬다(“The Iterational Dimension”). 저자들은 iterational 요소를 “the selective reactivation by actors of past patterns of thought and action, as routinely incorporated in practical activity”로 정의하며, 그 일차적 자리(primary locus)를 사회 경험의 schematization(도식화) — schema의 재인·선택·적용 — 에 둔다. 핵심은 habit을 stimulus-response의 기계적 반응으로 보는 관점(Camic이 비판한 20세기 사회과학의 경향)을 거부하고, Aristotle의 hexis, Aquinas의 habitus, Dewey의 “능동적 수단으로서의 습관”, Merleau-Ponty와 Schutz의 prereflective intentionality, 그리고 Bourdieu의 habitus와 Giddens의 recursivity까지 이어지는 전통 속에서 “가장 routine화된 행위에도 agentic dimension이 있다”고 보는 점이다. 다만 저자들은 Bourdieu·Giddens가 과거에 의한 과잉결정(행위를 재생산으로 환원)에 머무른다고 보아, iteration의 내부 구조를 selective attention, recognition of types, categorical location, maneuver, expectation maintenance 등 하위 과정으로 더 미세하게 분해한다. 이 음 안에서 미래는 expectation으로, 현재는 maneuver로 부차음처럼 함께 울린다.
projective dimension — 미래를 향한 상상적 궤적의 생성
이 절은 두 번째 음을 다루며, 최근 사회학이 가장 소홀히 한 미래 정향(future orientation)을 복권시킨다(“The Projective Dimension”). projective 요소는 “the imaginative generation by actors of possible future trajectories of action, in which received structures of thought and action may be creatively reconfigured in relation to actors’ hopes, fears, and desires for the future”로 정의된다 — 행위자는 단지 과거 routine을 반복하는 자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발명자(inventors of new possibilities)“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Bourdieu·Giddens가 maneuver와 expectation 같은 낮은 수준의 반성성에 머물러 schema가 어떻게 도전·재고·재구성되는지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agency의 자리를 경험의 hypothesization(가설화) — 받은 schema를 넘어 대안적 미래 응답을 생성하는 일 — 에 둔다. projectivity는 radically voluntarist(급진적 의지주의)도 narrowly instrumentalist(좁은 도구주의)도 아니며, iterational 음과 practical-evaluative 음 사이의 “critical mediating juncture”(결정적 매개 지점)에 위치하여 반성성으로의 첫걸음을 이룬다. 사상사적으로는 현상학·실존주의(Husserl의 시간구조, Heidegger의 care/Sorge, Sartre, Schutz의 “project” 개념), 그리고 Dewey·Mead의 실용주의에 뿌리를 두며, 내부 구조로는 anticipatory identification, narrative construction, symbolic recomposition, hypothetical resolution, experimental enactment의 음들이 구분된다.
practical-evaluative dimension — 현재의 판단, 그리고 agency-structure의 double constitution
이 절은 세 번째 음과 논문의 종합부를 함께 다루며, 현재(present)의 우연성에 응답하는 판단 능력과 agency-structure 관계의 재정식화로 글을 닫는다. practical-evaluative 요소는 “the capacity of actors to make practical and normative judgments among alternative possible trajectories of action, in response to the emerging demands, dilemmas, and ambiguities of presently evolving situations”로 정의되며, 그 일차적 자리는 사회 경험의 contextualization(맥락화)이다 — Aristotle의 phronesis(practical wisdom)에서 출발해 Kant의 reflective judgment·“enlarged mentality,” Dewey·Arendt·Habermas의 대화적 판단, 페미니즘의 “situated/contextual judgment”까지 이어지며, 내부 음은 problematization, characterization, deliberation, decision, execution으로 구분된다. 마지막 종합에서 저자들은 Bourdieu·Giddens의 “mutually constitutive” 정식이 Archer가 말한 “fallacy of central conflation”(구조와 행위를 너무 얽어 그 interplay를 검토 불가능하게 만드는 오류)에 빠진다고 보고, 대신 double constitution(이중적 구성)을 제안한다 — “temporal-relational contexts support particular agentic orientations, which in turn constitute different structuring relationships of actors toward their environments.” 다만 Archer의 분석적 이원론(analytical dualism)과 달리, 저자들은 구조와 agency를 시간을 가로질러 완전히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actors가 structure에 관계 맺는 가변적이고 변화하는 방식”을 분석적으로 가시화하려 한다. 이로써 경험연구의 과제는 ① 어떤 temporal-relational context가 어떤 agentic orientation을 지지하는가, ② orientation의 변화가 행위자에게 어떤 매개 능력을 주는가, ③ 행위자가 자기 orientation을 재구성해 맥락과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세 질문으로 정식화된다.
관련 연구 비교 매트릭스
| 축 (axis) | Emirbayer & Mische 1998 (TARGET) | Giddens 1984 (structuration) [base] | Bourdieu (habitus) [base/대안] | Sewell 1992 (“A Theory of Structure”) [direct] | Joas 1996 (Creativity of Action) [direct] | Archer (morphogenesis) [direct/대안] |
|---|---|---|---|---|---|---|
| agency를 보는 핵심 관점 | 과거·미래·현재 세 음의 chordal triad, 곧 “temporally embedded process of social engagement” | duality of structure 속 knowledgeable agent, routine을 reflexive하게 모니터링 | habitus가 낳는 durable disposition의 발현 — 대체로 reproduction | structure(schema+resource)를 갖춘 행위자의 transposition 능력 | 모든 행위에 내재한 situated creativity, 목적-수단의 상황적 공동생성 | structure와 분석적으로 구별되는 자율적 인과력 |
| 시간성(temporality) 취급 | 핵심 축 — iteration/projectivity/practical evaluation을 시간 정향으로 명시적 이론화 | 약함 — Giddens가 agency의 시간성을 과소이론화했다고 비판 | 과거 편향 — habitus는 “과거의 미래화”이나 미래/현재 정향이 빈약 | 거의 다루지 않음 — agency의 내부 시간 구성을 안 봄 | 미래·현재 정향과 공명 — projective·practical-evaluative 음의 사상적 토대 | 시간 위 분석적 분리로 다루나 주관적 시간 정향은 약함 |
| structure와의 관계 | double constitution — context가 orientation을 지지하고 orientation이 다시 structuring 관계를 구성 | mutually constitutive (불가분) | habitus와 field의 상호결정, 그러나 재생산 쪽으로 기울어짐 | schema의 transposability와 resource로 변화 가능성 확보 | 창조성이 제도·습관을 영속적으로 재조직 | analytical dualism — 구조와 agency를 시간 가로질러 분리 유지 |
| 핵심 장치/개념 | chordal triad, temporal-relational context, relational pragmatics | duality of structure, recursivity, stratification model | habitus, field, practical sense | transposable schemas + resources | creative action, “creative democracy” | morphogenetic cycle, central conflation 비판 |
| 핵심 주장 | agency를 세 시간 차원으로 해체해야 그 변이와 structure와의 interplay가 경험적으로 보인다 | structure는 행위의 매개이자 산물(중층화된 의식) | 행위는 무의식적 disposition의 전략적 동원으로 대개 질서를 재생산 | 변화는 다중적·우연적·균열된 structure 개념 위에서만 가능 | 행위이론을 합리주의·규범주의 전제에서 구출, 창조성을 중심에 | 구조·agency를 섞으면 그 interplay를 검토할 수 없다 |
| target과의 관계 | — | 위에 세우되 시간성 결핍으로 비판 | iterational 음과 공명하나 과거 과잉결정으로 비판 | 가장 가까운 대화 상대, schema 차용 후 시간성으로 확장 | projective/practical-evaluative 음과 깊이 공명 | interpenetration vs analytical dualism으로 대조 |
| 경험연구 적용 가능성 / 데이터 | agentic orientation의 변이를 분석 단위로 — settled/unsettled 시기, brokerage 위치, life-course 전환점 | 재생산·routine 연구에 적용되나 변이 측정 틀은 약함 | cultural competence, 계급·취향(Distinction)류 재생산 연구 | language·state·자본주의 경제 등 structure별 변화율 명제 | microinteraction과 거시 모두, 단 “창조성의 차이”는 bracket | morphogenetic 분석으로 구조변동 추적 |
종합: Emirbayer와 Mische는 agency를 다시 이론화하되, 그 열쇠를 “인간 경험의 시간성(temporality)에 대한 더 적합한 이론화”에서 찾는다. 이들은 habit 중심(Bourdieu)과 structuration(Giddens) 양쪽이 각각 과거 편향과 시간성 과소이론화로 agency를 재생산으로 납작하게 만든다고 보고, 과거·미래·현재의 세 음이 늘 함께 울리는 chordal triad로 agency를 재구성한다. 이 틀은 Sewell의 transposable schema 논의를 받아들여 변화 가능성을 확보하고, Joas의 situated creativity와 공명하여 미래·현재 정향을 복권시키며, Archer의 analytical dualism과 달리 구조-행위를 완전히 분리하지 않으면서도 double constitution을 통해 그 가변적 관계를 경험적으로 분석 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이 논문의 위치는, agency를 시간 정향의 변이로 재정의함으로써 자유의지/결정론과 재생산/변형의 이분법을 넘어, 행위자가 자기 맥락을 매개·변형하는 능력을 측정 가능한 연구 질문으로 전환한 데 있다.
원자적 인사이트 (Zettelkasten)
💡 행위성은 실체가 아니라 ‘시간 정향의 변이’다
유형: 이론적
행위성을 행위자가 가진 어떤 능력이나 자원, 고정된 속성으로 보는 통념을 뒤집어, 행위성을 과거·현재·미래라는 세 시간 지평에 대한 정향(orientation)의 가변적 배합으로 재정의한다. 따라서 “얼마나 행위적인가”가 아니라 “어느 시간 차원이 지배적인가”가 분석의 단위가 된다. 같은 사람도 안정기에는 과거 지향(iterational)이, 위기에는 미래 지향(projective)이 전면화될 수 있다.
핵심 조건/맥락: 행위성을 구조에 흡수해 routine으로 보거나 합리적 선택의 목적지향성으로 환원하던 양극단을 모두 거부할 때 성립한다.
활용 가능성: 동일 주체의 행동 변화를 ‘능력 차이’가 아니라 ‘시간 정향의 이동’으로 코딩하는 질적·역사적 분석 틀로 사용. (Defining Agency의 자연주의적 행위자 규정과 비교.)
💡 습관조차 agentic하다 — 단 과거로 환원하면 변형을 못 본다
유형: 이론적
iterational 차원은 습관·반복을 다루지만, 이를 수동적 자동반응이 아니라 과거의 schema를 현재에 선택적으로 재활성화하는 능동적 작업(schematization)으로 본다. 즉 재생산조차 행위를 요구한다. 그러나 행위성을 이 차원만으로 환원하면(Bourdieu의 habitus 비판 지점) 어떻게 새로운 것이 출현하고 구조가 변형되는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핵심 조건/맥락: projective·practical-evaluative 차원이 함께 울리는 chordal triad 안에서만 iterational의 ‘능동성’과 그 한계가 동시에 보인다.
활용 가능성: 제도·관행의 재생산을 분석할 때 ‘그냥 관성’으로 처리하지 않고, 재생산을 떠받치는 능동적 schema 작업을 드러내는 렌즈.
💡 이중 구성(double constitution) — 섞지도 분리하지도 않는 제3의 길
유형: 연결
구조와 행위의 관계에서, 둘을 한 덩어리로 뭉뚱그리는 입장(Archer가 비판한 central conflation)도, 둘을 분석적으로 완전히 떼어놓는 입장(Archer의 analytical dualism)도 모두 피한다. 대신 시간적·관계적 맥락이 행위 정향을 떠받치고, 그 정향이 다시 구조화하는 관계를 구성한다는 상호 구성(double constitution)을 제안한다. 행위성과 구조는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로 맞물린다.
핵심 조건/맥락: 맥락을 정태적 제약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펼쳐지는 관계로 볼 때 성립한다.
활용 가능성: 구조와 행위 중 무엇이 먼저냐는 순환 논쟁을 우회해, 둘의 상호 구성 과정을 경험적으로 추적하는 설계 원리. (On Actor-Network Theory - A Few Clarifications의 관계적 행위자관과 연결.)
핵심 용어 정리
| 용어 | 정의 |
|---|---|
| 행위성 (agency) | 이 논문에서는 행위자의 고정된 능력이나 속성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의 시간 지평에 배태된 채 작동하는 사회적 관여 과정(temporally embedded process of social engagement). 세 시간 차원의 가변적 배합으로 정의된다. |
| 화음 삼화음 (chordal triad) | 행위성의 세 시간 차원(iterational·projective·practical-evaluative)이 결코 따로 울리지 않고 화음처럼 늘 함께 울린다는 음악적 비유. 한 음이 지배적이어도 나머지는 subtone(저음)으로 동시에 울린다. |
| 반복적 차원 (iterational dimension) | 과거의 사고·행위 패턴(schema)을 현재 상황에 선택적으로 재활성화하는 차원. 정체성과 사회 질서의 재생산을 떠받치며, 핵심 작동은 schematization. |
| 투사적 차원 (projective dimension) | 가능한 미래의 행위 궤적을 상상적으로 생성·재구성하는 차원. 희망·두려움·욕망을 미래 시나리오로 빚어내는 작업으로, 핵심 작동은 hypothesization(가설화). |
| 실천-평가적 차원 (practical-evaluative dimension) | 현재 상황이 제기하는 요구·딜레마·모호함에 대해 실천적·규범적 판단을 내리는 차원.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지(phronesis)에 해당하며, 핵심 작동은 contextualization(맥락화). |
| 도식화 (schematization) | 과거에 형성된 schema(전형화된 사고·행위 패턴)를 현재에 선택적으로 불러내 적용하는 iterational 차원의 능동적 작업. 습관·재생산을 수동적 자동반응이 아닌 행위로 보게 만든다. |
| 이중 구성 (double constitution) | 시간적·관계적 맥락이 행위 정향을 떠받치고, 그 정향이 다시 구조화 관계를 구성하는 상호 구성 관계. 구조와 행위를 한 덩어리로 뭉치지도(central conflation), 완전히 분리하지도(analytical dualism) 않는 제3의 길. |
| 관계적 실용주의 (relational pragmatics) | 행위성을 고립된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전개되는 사회적 관계의 장 안에서 일어나는 실천으로 보는 관점. 실용주의(특히 Mead·Dewey) 전통과 관계 사회학을 잇는 이 논문의 메타 입장. |
관련 연구
- On Actor-Network Theory - A Few Clarifications — 행위자를 고립된 실체가 아닌 관계망 속에서 규정하는 또 다른 사회과학적 접근. 단, 이 논문이 인간 행위자의 시간 정향에 집중하는 반면 ANT는 비인간 행위자까지 행위자 범주에 포함한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 Group Agency and Supervenience — 개인을 넘어 ‘집단’이라는 또 다른 사회적 행위자를 규정하려는 시도. 행위성의 담지자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만난다.
- Defining Agency — 자연주의적·생명체 기반으로 행위성을 정의하려는 접근. 사회·시간적 정의(이 논문)와 행위성 개념의 또 다른 정초 방식을 비교할 지점.
- Freedom of the Will and the Concept of a Person — 행위성을 개인 내적 의지(2차 욕구) 구조로 정초하는 철학적 접근. 행위성을 사회적·관계적 과정으로 외재화하는 이 논문과 정면으로 대비된다.
태그
paper #1998 sociology agency structure-agency temporality social-theory pragmatism
BibTeX
@article{emirbayer1998,
title={What Is Agency?},
author={Emirbayer, Mustafa and Mische, Ann},
journal={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volume={103},
number={4},
pages={962--1023},
year={1998},
doi={10.1086/231294},
url={https://www.jstor.org/stable/10.1086/231294},
publisher={University of Chicago Press}
}